야구란 무엇인가
책소개
데뷔 이십 주년을 맞이한 소설가 김경욱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삼십 년 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동생 때문에 한 가족의 삶이 파탄에 이르는 이야기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채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웅크린 채 지냈던 주인공은 아홉 살짜리 아들 진구를 데리고 복수를 하기 위해 서울의 ‘염소’를 찾아나선다
저자소개
소설 외부로부터 혹은 이전 텍스트로부터 소재를 끌어와 재가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습과 응용이 빠른 영민한 작가 소설가 김경욱.
1971년 광주에서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004년 단편소설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제37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7년 단편 「99%」로 제53회 현대문학상을, 2009년 『위험한 독서』로 제40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최근작인 『동화처럼』에 대해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한국판 「첨밀밀」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연애담”인 『동화처럼』에 대해 평범한 남녀가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하는 우여곡절을 통해 어른들을 위한 “현대판 동화로 아름답게 완성”되었다고 평한다. 동화로 시작해 연애소설을 거쳐 성장소설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연애성장소설 『동화처럼』은 동서고금을 종횡무진하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 김경욱이 들려주는 한 편의 동화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냄새로 가득한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다.
또한 「위험한 독서」는 소설의 독법을 소설쓰기의 소재로 삼고 있는 단편이다. 현대사회에서 문제되고 있는 개인과 개인의 소통의 단절을 독서법의 차이에서 찾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사물의 존재와 그 의미가 얼마나 주관적인 것에 의해 재단되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위험한 독서』는 김경욱이 가진 장점이 잘 드러난 소설집이다.
그 밖에는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1996), 『베티를 만나러 가다』(1999),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 『장국영이 죽었다고?』(2005)와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1995), 『모리슨 호텔』(1997), 『황금 사과』(2002)를 펴냈고,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서사창작과 교수로 있다.
목차
야구란 무엇인가
작가의말
출판사서평
야구란 무엇인가? 혹시라도 당신이 야구팬이라면 이러한 질문을 받아들고 나름의 대답을 하기 이전에 먼저 야구의 고전 『야구란 무엇인가(New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스포츠 전문기자로 활약한 레너드 코페트가 저술한 야구인들의 필독서 말이다. 어쩌면 당신은 아마 다음과 같은 사실까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다름아닌 “무서움”이라는 화두로 시작된다는 것. 야구란 바로 무서움을 다루는 경기이며 이를 간과한다면 야구에 대해 결코 어떤 이야기도 전개해나갈 수 없으리라는 것 말이다.
이제 각도를 달리한 그러나 결코 대상을 우회하지 않는 ‘소설적 질문’을 던져보자. 야구란 무엇인가? 아마 이는 레너드 코페트가 던지고 답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다. 소설가에 의해 소설로써 던져진 질문이므로. 1993년 스물세 살에 데뷔한 이래로 무서운 집념과 성실함으로 소설을 써오며 “소설기계”(문학평론가 서영채)라는, 일찍이 그 누구에게도 붙여진 적이 없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경욱. 2013년 올해로 데뷔 이십 주년을 맞이한 그가 여섯번째 장편소설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너희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봐.
주사위를 던져서 홀수면 빨갱이고 짝수면 아니야.
제목과 달리 『야구란 무엇인가』는 본격적으로 야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일종의 복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광주가 고향인 사내에게는 삼십 년 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동생이 있다.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하고 있던 그날의 광주, 그저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걸려든 형제. 군인 중 하나였던 ‘염소’는 형제에게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보라며 동생의 주머니에서 나온 주사위를 내민다.
선택의 여지는 없으므로 사내의 동생은 주사위를 던질 뿐이다. 이 주사위가 과연 형제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 동생은 주사위가 숫자를 내보이기 전에 입으로 삼켜버린다. 아마 유달리 영특했던 동생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목숨은 한낱 주사위가 아니라 악랄한 광기에 사로잡힌 군인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결국 동생은 그를 괘씸하게 여긴 군인들에게 가혹한 구타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숨지고 만다. 삼켰던 주사위를 항...(하략)
책속으로
사내도 떠날 차비를 한다. 아주 먼 길이 될 것이지만 준비할 게 많지는 않다. 하나뿐인 양복을 장롱에서 꺼내 입고 상의 안주머니에 칼과 주사위와 청산가리를 챙겨 넣는다.
칼은 염소를, 주사위는 동생을, 청산가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다.(83쪽)
집에 돌아가.
조명등이 하나둘 꺼진다. 하얗게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일요일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순간, 사내의 두개골 아래에 고인 어둠이 번쩍 밝아온다.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머릿속에 들어앉는다. 희미해진 파울라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머릿속에 펼쳐진 새하얀 길이 사내의 눈초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놀란 표정을 만들어낸다. 사내는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아이가 들춘 야구의 진실에 부르르 몸을 떤다.
--- pp. 248~249
야구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밥이고 누군가에게는 법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이고 누군가에게는 물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혼이고 누군가에게는 한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집이고 누군가에게는 길일 수 있다.
여기 집을 떠나 낯선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해야 할 일이 하나 있고 아들에게는 해서는 안 될 일이 많다.
아버지의 품에는 칼이 아들의 품에는 나침반이 있다.
칼을 품은 아버지와 나침반을 품은 아들이 함께 야구를 본다.
칼을 품은 아버지에게 야구란 무엇이고 나침반을 품은 아들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그리하여 당신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것은 야구에 관한 소설이 아니다.